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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광희동 2가 105번지에 있는 광희문은 조선 시대 서울의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광명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서울 성곽 안에는 묘를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서울 외곽 밖으로 가지고 나가 묘를 써야 했는데, 이때 서소문과 광희문을 통해 시신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런 이유로 광희문은 시신을 내어가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박해시대에 수많은 교우들은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포도청 등에서 신문을 받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당시 옥중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광희문을 통해서 밖으로 내버려졌는데, 1846년 병오박해 때 포도청에서 교수형을 당한 김임이 데레사, 우술임 수산나, 정철염 가타리나 성녀의 시신은 광희문 밖에 버려진 후 신자들이 거두어 매장하였습니다. 1867년에 포도청에서 순교한 송백돌 베드로의 시신 역시 광희문 밖 성벽 밑에 묻혔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