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포도청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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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정보

소리로 듣기 좌포도청은 중부 정선방 파자교 동북(과거 서울 종로구 단성사 일대)에 위치하여 조선시대 서울 동·남·중부와 경기좌도를 관할하던 경찰서로 중종 이후 포도청으로 존속하다가 고종 31년 7월 경무청으로 개편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에 대한 기찰이나 체포가 금조에 포함된 것은 고종 때 부터인데, 실제 규정과는 달리 천주교 신자들의 기찰·체포에 대한 임무는 그 이전부터 수행되어 왔으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해서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던 혹독한 형벌(濫刑)이 행해져, 이곳에서 장살, 교수, 옥사 등의 순교가 이루어졌습니다. 포도청에서 천주교 박해에 개입하게 된 것은 1795년 북산사건으로 발생한 을묘박해 때가 최초였습니다. 박해시기 수많은 신자들이 좌·우포도청에서 순교하였으나 기록상 좌?우포도청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103위 성인 중 22위, 124위 복자 중 5위가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는데, 특히 기록상 명확히 좌포도청에서 순교한 분으로는 최경환 프란치스코, 민극가 스테파노, 허임 바오로, 남경문 베드로, 임치백 요셉 성인이 있으며, 1795년 을묘박해 때 윤유일 바오로, 지황 사바, 최인길 마티아도 좌포도청으로 끌려와 혹독한 매를 맞고 순교하였습니다. 또한, 기해박해 때 성인 중 70명이 포도청에서 온갖 문초와 형벌을 받았는데, 정하상 바오로, 앵베르(범) 라우렌시오 주교, 모방(나) 베드로 신부, 샤스탕(정) 야고보 신부가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까지 신앙을 증거했던 곳이 바로 좌포도청입니다. 좌포도청의 표지석은 종로3가역 3호선 9번 출구 앞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