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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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정보

소리로 듣기 계동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 지역으로, 천주교회 창설 초기, 조선 신자들은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성직자의 파견을 요청했고, 구베아 주교는 주문모 신부를 조선 선교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주 신부는 조선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794년 12월 24일에 조선에 입국하였습니다.
한양에 도착한 주문모 신부는 계동에 있는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 머물렀는데 주 신부는 여기서 한글을 배웠으며, 1795년 예수부활대축일에는 신자들과 함께 조선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주문모 신부의 입국 사실이 탄로 났고, 주 신부는 여회장 강완숙 골롬바의 집으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반면에 주 신부의 입국과 활동에 도움을 준 최인길은 윤유일 바오로, 지황 사바와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은 후 1795년 6월 28일에 순교하였습니다.
현재 이 지역은 가회동 본당 관할 구역인데, 1955년 8월 9일에 병인박해를 일으킨 흥선대원군의 손자이자,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가회동 본당 박성춘 레오 신부로부터 안국동 별궁에서 ‘비오’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같은 해 8월 14일에는 의친왕비 김숙도 ‘마리아’라는 본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