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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남터는 원효로 남부와 한강로 서편 사이와, 남으로는 한강변까지의 황량한 모래터였습니다. 남대문 밖 저습지였던 모래벌 새남터는, 간혹 풀이 우거져 있기는 하나 사람이 거주하거나 농토를 일굴 수 없는 모래토 황무지였습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그 북부 일부를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해 왔으며, 때로는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은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새남터와 조선 천주교회와의 악연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성직자 없이 천주 신앙공동체 조직을 이루고 천주 신앙생활을 시작한 조선 천주교인들의 성직자영입운동에 따라 선교활동을 펴고 있던 조선 교회 최초의 신부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박해 당국에 의해 새남터에서 처형됨으로써 비롯되었습니다. 그 후 한강가, 쓸쓸하고 황막한 모래땅 새남터는 우리 교회에 큰 박해가 닥칠 때마다 외국인 주교나 신부 등 선교사와 우리 신자 다수가 참수 치명된 대표적 순교성지가 되었고 새남터에서 순교한 순교자들 가운데 11위가 1984년 5월에 시성되어 103위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