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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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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종로구 혜화동 90-1
소개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장소이며 한국 교회 사제 성소의 요람
기억해야 할 인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묵상과 기도
믿음직한 젊은이들을 많이 부르시어 주님의 제자로 삼으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소서.
*성소자 양성 공간이므로 개방이 어렵습니다. 기도로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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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혜화동 90-1에 위치한 가톨릭대학교 성당에는 최초의 한국인 신부님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은 여러 신자들에 의해 와서(지금의 왜고개)에 안장되었다가 서 야고보, 박 바오로, 한경선, 이민식 등 몇몇 신자들이 다시 미리내로 이장하였습니다.
그 후 1886년 기해, 병오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조사를 할 때 교구 재판 판사인 프와넬 신부가 미리내에 있던 봉분 중앙을 헤치고,
관을 묻은 뒤에 구덩이 위를 덮는 넓은 나무 판인 횡대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1901년 5월 21일에는 프와넬 신부와 드망즈 신부,
안성 본당 공베르 신부, 미리내 본당 강도영 신부가 참여한 가운데 유해를 발굴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횡대는 봉분 안에 다시 넣고 원상태로 봉분을 쌓았으며 발굴된 유해는 강도영 신부의 사제관에 안치하였다가 5월 23일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 안치하였습니다. 이후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는 6·25전쟁 당시 이재현 신부에 의해 비밀리에 성당 옆 성모상 아래 숨겨지기도 했고, 전쟁이 더욱 심각해지던 1950년 9월 28일에는 경남 밀양으로 피난 가 있던 소신학교로 옮겨 모셔졌다가, 전쟁이 끝난 후 혜화동 소신학교 성당으로 옮겨 안치되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 7월 5일 신축 중이던 성신교정 성당이 완공되자, 유해 가운데서 하악골을 미리내 경당으로,
치아는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으로 분리, 안치시키고 나머지 유해는 성당으로 옮겨와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1994년 2월 성당 수리공사를 할 때 새로 석관묘를 제작하여 옮겼으며, 1901년부터 1994년 2월 24일까지 사용했던 기존의 목관과
대리석판은 학교 내 전례박물관으로 옮겨 소장하고 있습니다.
※ 자세한 성지 내용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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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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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중구 광희동 2가 105
소개
도성 안에서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을 운반해 내던 문
기억해야 할 인물
성녀 김임이, 성녀 우술임, 성녀 정철염, 순교자 송백돌
묵상과 기도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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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광희동 2가 105번지에 있는 광희문은 조선 시대 서울의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광명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서울 성곽 안에는 묘를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서울 외곽 밖으로 가지고 나가 묘를 써야 했는데,
이때 서소문과 광희문을 통해 시신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런 이유로 광희문은 시신을 내어가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박해시대에 수많은 교우들은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포도청 등에서 신문을 받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당시 옥중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광희문을 통해서 밖으로 내버려졌는데,
1846년 병오박해 때 포도청에서 교수형을 당한 김임이 데레사, 우술임 수산나,
정철염 가타리나 성녀의 시신은 광희문 밖에 버려진 후 신자들이 거두어 매장하였습니다.
1867년에 포도청에서 순교한 송백돌 베드로의 시신 역시 광희문 밖 성벽 밑에 묻혔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 자세한 성지 내용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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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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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종로구 인의동 167 (02-765-6101)
소개
포도청 순례지 성당
기억해야 할 인물
포도청(옥터) 순교자 현양관(성당 지하)
묵상과 기도
서울대교구 성지 순례길을 걸으며 신앙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기억하고
그들처럼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성령의 은총을 청합시다.
*서울대교구 성지순례 안내 센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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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성당은 종로구 인의동 167번지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종로 본당은 2013년 2월 28일자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로부터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받았습니다.
포도청 순교지는 103위 성인 중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대철 베드로, 허임 바오로 등 스물한 분, 현재 시복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124위 중 윤유일 바오로 등 5위가 장살, 옥사, 교수 등으로 순교한 곳입니다.
그러나 현재 좌·우포도청 터를 알리는 표지석에는 그곳이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터임을 알리는 내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종로 본당에서는 본당 관할 구역 내에 있는 좌·우포도청에서 일어났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인 사건과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성당 내에 서울대교구 성지순례 안내소를 설치함과 동시에 서울시에 순교터 표석 설치를 요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지순례 안내소에는 포도청 순례지 안내 지도와 리플릿,
그리고 조선 후기 포도청과 천주교 순교사를 정리한 ‘포도청 순례’ 안내책자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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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포도청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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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종로3가역 3호선 9번 출구 앞
소개
박해 시기 신앙 선조들의 순교지
함께 볼 곳
‘하느님의 종’ 최인길·윤유일·지황
묵상과 기도
하느님을 내 삶의 첫 자리에 모실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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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청은 원래 도적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 ․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 담당 업무가 확대되어 한성부민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금지 조항을 위반하는 사건들을 다루었고,
개항기에는 궁문수비 ․ 외국공사관의 경비 ․ 반역죄인에 대한 심문까지도 담당하였습니다.
또한 지방의 중죄인을 압송 ․ 체포하여 조사하고, 그 죄의 경중에 따라 의금부와 형조 등 상급기관으로 이송하는
중간기구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습니다. 좌포도청은 정선방 파자교 동편에 설치되었는데,
이 지역은 현재 종로구 묘동 56번지 단성사 일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좌포도청이 담당한 구역은 서울의 동부 ․ 남부 ․ 중부와 경기 좌도, 즉 강화, 광주, 김포, 수원, 시흥, 안성, 용인,
인천 등지였습니다.
박해시기 수많은 신자들이 좌 ․ 우포도청에서 순교하였으나 기록상 좌 ․ 우포도청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순교자들은 포도청에서 순교했다고만 알려지고 있습니다. 1795년 을묘박해 때는 최인길 마티아, 윤유일 바오로,
지황 사바가 체포되어 좌포도청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다가 1795년 6월 28일에 포도청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좌포도청 표지석은 종로3가역 3호선 9번 출구 앞에 있습니다.
※ 자세한 성지 내용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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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벽의 집 터―수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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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종로구 청계천로 105 두레시닝 건물 앞
소개
평신도에 의한 자발적인 최초의 신앙 공동체 탄생
기억해야 할 인물
이벽, 이승훈, 정약용, 권일신
묵상과 기도
세례 때의 거룩한 원의를 기억하며 그 신앙의 열정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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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北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영세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 베드로는 1784년 겨울,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이벽은 ‘세례자 요한’, 정약용은 ‘사도 요한’, 권일신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라는 세례명으로 첫 세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로써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평신도에 의한 자발적인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탄생하였습니다.
정약용이 쓴 <여유당전서>에는 당시 이벽의 집이 서울 수표교, 현재의 서울시 중구 수표동 43번지와
종로구 관수동 152번지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 기록에 근거하여 그 근처 인도에
기념표석을 건립한 것입니다. 보다 확실하게 집 터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청계천 건너 지역이지만 상가가 밀집하여 표지석을 세울 장소를 찾기 어려워 현재의 위치에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종로구 청계천로 105 두레시닝 건물 앞에 서 있는 표지석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정조 8년(1784년) 겨울,
이 수표교 근처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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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의 집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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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중구 을지로 2가 181 외환은행 앞 장악원 터 표석 자리 앞
소개
명례방 사건(을사추조적발사건)이 일어난 곳
기억해야 할 인물
김범우
묵상과 기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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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은 남산 아래의 여러 마을들과 지금의 을지로 입구에서 명동 성당 부근까지를 포함하고
있던 곳입니다. 명례방이 한국 천주교회사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게 되는 시기는 1784년 말 또는 1785년 초였습니다.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열던 신앙 모임을 명례방 장악원 앞에 위치한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하게 된 것입니다.
1785년 봄 명례방 공동체에서 신자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을 때, 우연히 김범우의 집 앞을 지나가던 형조의
금리가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술 먹고 노름하는 모임이라고 여겨 집 안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그런데 노름은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거동을 해괴하고 이상하다고 여겨,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모두 형조로 압송하는 동시에 그들이 지니고 있던 천주교 서적과 물건들을 압수하였습니다.
형조판서 김화진은 압송된 이들 가운데 양반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중인인 김범우만 옥에 가두었는데
김범우는 갖가지 형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김범우는 얼마 뒤 형을 선고받고 충청도
단양으로 보내졌습니다. 김범우는 단양에 가서도 공공연하게 신앙생활을 하였고,
또한 여러 사람에게 천주교를 설파하였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1786년 정배지인 단양에서 선종하였습니다.
현재 명례방을 알리는 표지석은 없고 중구 을지로 2가 181 외환은행 앞 장악원 터 표석 자리
앞쪽을 김범우의 집 터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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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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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중구 명동 2가 1 (02-774-1784)
소개
한국 교회 최초의 본당이며 성인 다섯 분과 순교자 네 분의 유해가 모셔진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
기억해야 할 인물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성 샤스탕·푸르티에·프티니콜라 신부, 성 최경환, 성 김성우,
이 에메렌시아, 무명 순교자 1명
함께 볼 곳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명동 대성당 성모동산 뒤)
지하 묘역(지하 소성당 내)
묵상과 기도
자주 고해성사를 보고 진실한 마음으로 성체를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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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명동 일대는 옛날 조선 ‘한성부 남부 명례동(明禮洞)’에 속하던 지역입니다. 지금은 주위 고층빌딩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북달재’라고 불리던 남산 북녘 언덕 위에 세워진 명동 대성당은 도성 내 어느 곳에서나 올려다 보이던, 뾰족탑이 인상적인 서양식 교회 건물로 세인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이 개항정책을 취하게 되면서 교회에 대한 정부의 박해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자, 교회 당국은 1882년 4월에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본당으로 종현 본당, 지금의 명동 본당을 설정했습니다. 이후 1882년 7월 26일에 부주교로 임명된 블랑 신부가 신병으로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가 요양 중이던 리델 주교가 1884년에 선종하면서 조선대목구 제7대 교구장직을 승계하였습니다.
1890년 블랑 주교가 사망한 후 제8대 교구장 주교로 착좌한 뮈텔 주교는 1892년 조선 최초의 서양식 대성당 건축을 착공하게 되었습니다.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성당을 짓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공사 현장의 중국인 기능공들이 본국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1년 이상이나 공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 종결 후 공사를 재개하였으나 준공을 앞두고 공사를 감독하던 코스트 신부가 선종하는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이 연거푸 발생하였지만 푸아넬 신부가 대신 마지막 공사를 서둘러 1898년 5월 29일에 대성당 축성식을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명동 대성당의 지하 소성당 묘역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설계 때부터 계획된 시설로서, 시복 수속 작업의 일환으로 각지에서 발굴된 순교자들의 유해가 1900년부터 이곳으로 옮겨져 안치되었습니다. 현재 명동 지하 성당에는 순교 성인 다섯 분과 순교자 네 분 등 모두 아홉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김성우 안토니오, 순교자 이 에메렌시아, 무명 순교자 1명,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가 모셔져 있어, 기도와 참배를 위해 찾는 순례자들이 많은 성역입니다. 이 가운데 이 에메렌시아는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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